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오동 전투(영화)/고증 (문단 편집) ==== 영화속 묘사 ==== 봉오동 전투 이전 전투 묘사 * 영화 시작 장면의 일본군의 참수 사진은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 사진으로 보인다. [[http://historyworldwar2-bodong.blogspot.com/2010/11/brutal-japanese-rape-of-nanking-1937.html|일본군의 중국인 학살사진]] 위의 인터뷰에서 말한 조선인 학살 사진이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 사진이라면 고증오류다. * 도입부에서 어째서인지 일본 육군 3명이 사복을 입고 육군 군복을 감춘 채 유해진과 동생의 안내를 받아 강을 건너는데, [[스파이|공작 임무]] 등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힘들게 강 넘어갈 거 없이 그냥 사복 차림에 [[기차]] 타고 넘어가거나 뱃삯 주고 건너면 됐다. 당시 조중 국경은 특히 중국 쪽은 거의 방치되어 있었던 데다, 양국 간 전쟁 중도 아니라서 오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 초반 장면에서 독립군이 경계하는 일본 육군 초소를 습격해서 [[소년병]] 하나 제외하고 쓸어버린다. 생포된 소년병 유키오 [[일병|일등졸]]은 칼라의 [[병과]] 표지가 검정, 즉 헌병인데, 육군 헌병은 타 병과 [[상병|상등졸]]들 가운데서만 선발했으므로, 고증 오류이다. 또한, 당시 독립군이 습격한 곳은 육군이 아닌 경찰 초소였고, 전과도 경찰 부상 1명이 전부였다. * 일본 육군 [[하사관]]과 [[병사]]들의 머리 길이가 너무 길다. 동 시기 일본 육군은 사병 전원, [[장교]]도 나이와 계급에 따라 눈치껏 기르지 않는 한 [[삭발]]이 원칙이었다. 작중 지위에 맞는 머리 모양을 한 일본군은 야스카와 소좌 뿐이다. * 중간에 야스카와 소좌가 아라요시 중위에 대한 징벌로 왼손 검지를 군도로 잘라 버리고는 "성공해서 돌아오면 도로 붙여 주마." 같은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암만 막장 일본군이어도 총, 칼을 사용해 부하를 상해하는 행위는 구타 등과 달리 용인될 수준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서 헌병에게 체포되어 상해죄로 재판에 회부될 중범죄다. * 일본군 남양수비대가 한인 민간지역을 습격하고 학살하는데 독립군이 그런 남양수비대를 발견하고 일방적으로 쓸어 버린다. * 일본군을 일방적으로 쓸어버리는 독립군 유격대도 비현실적이지만 해당 지역에 유격대가 있는데도 학살하는 현장에서 지나치게 헛점이 많고 시간을 끌면서 하고 있다. * 뉴시스에선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상영 등급을 고려해 볼 때, 좀 더 은유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3&aid=0009387555|#]]고 하였고 씨네21에선 "몇몇 장면들은 지나치게 잔혹하다. 서사를 위해 장르를 활용했다기보다는 장르적 쾌감을 위해 역사적 사건을 끌고 들어왔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40&aid=0000040561|#]]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봉오동 전투 전후의 학살방식은 무차별 발포인데 불필요하게 [[고어물]] 수준으로 묘사했다.[* 여담으로 작중에서 유해진이 일본군의 [[고환|그것]]을 뜯어버리는 장면도(...)] 고어 수준으로 묘사할 거면 봉오동 전투가 아니라 [[간도참변]]으로 설정해야 옳다. * 그리고 일본군의 학살을 묘사한다면 히어로 영화식 이야기는 포기해야 한다. 실제로 독일군의 학살을 다룬 [[컴 앤 씨]]도 현지 빨치산들은 독일군의 학살을 막지도 못하고 독일군을 쓸어버려도 전혀 유쾌하거나 통쾌하게 묘사되지 않고 현실의 전쟁처럼 우울하게 묘사한다. 실제로 전쟁 속 학살을 묘사할 때는 이렇게 묘사하는 게 정상이다. 영화 봉오통 전투처럼 극적 쾌감을 주는 히어로 영화식 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 이와 별개로 위의 인터뷰 내용과 영화 오프닝에서 실제 참수 사진을 보면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 사진을 조선인 학살 사진으로 착각 혹은 고의로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 독립군이 일방적으로 월강추격대 숙영지를 습격해서 동료들과 유키오 일등졸을 구출하고 빠져 나온다. 이 습격 자체가 허구인 데다 유키오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입대했다는 언급을 하며 또 고증 오류를 범했다. 당시 일본의 교육 제도상 고등학교는 지금의 고등학교와 다르게 대학 예과 과정으로 작중 나오는 도쿄제1고등학교는 당대 최고 명문 고등학교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이런 데 들어갔을 수재가 굳이 졸업 후 육군 장교도 아니고 병사로 입대할 가능성은 당시엔 거의 없었으니,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설정이다. * 영화 속 최유화 캐릭터는 매우 날씬한 여성 독립운동가인데, 절벽 밑 강으로 같이 떨어진 후 강에서 싸우다가 칼로 찔러죽이는 등 총 없이 육탄전으로 정규군인 일본군 병사를 발라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에도 다른 독립군과 전투력에서 대등하게 나온다. 불가능은 아니나 현실성은 떨어진다. * 작중 유해진 캐릭터는 총은 못 쏘고 칼만 잘 쓴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초반부에서 그걸 알려주는 장면이 개그장면으로 나온다. 문제는 이후 전투인데 중반부에 '''[[무협|유해진 캐릭터는 멀쩡히 있는 총은 쏘지 않고 혼자서 칼만 들고 멀쩡하게 총을 든 일본군을 쓸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유해진 캐릭터가 일본군들을 쓸어버리니 그제야 다른 독립군이 뒤따라 총을 쏜다. 이 장면에서 유해진 캐릭터가 칼만 써서 쓸어버린 일본군이 10~20명 사이다. 게다가, 절박한 위기상황도 아니고 탄환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였다. * [[도검제일주의|물론 전투지역이 수풀이 많은 데다 측면에서 기습해 왔고, 당시 총기가 볼트 액션 소총이라 완전 불가능 하진 않다]]는 비현실적인 옹호가 있고 [[잭 처칠|양손검 들고 전투에 승리한 괴짜]]인 잭 처칠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잭 처칠이 사용한 장검의 용도는 언제나 지휘용이었으며, 전투 와중에 검을 육탄전에 썼다는 얘기는 없다. ~~대신 활은 썼다~~ 다만, 당시 만주 전장에서 군인이 검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닌데, 애시당초 유해진이 사용한 [[대도]]는 중세부터 중국과 만주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던 냉병기였고, 후일 [[중일전쟁]]때도 [[대도|항일대도]]라는 이름으로 일본군과의 육탄전에서 사용될 정도로 중국계 군대와도 밀접한 인연이 있었다. 독립군이 주둔했던 만주 인근에서 대도가 중국 민간, 군에 널리 보급된 만큼, 외지에서 급히 들어와 주변의 환경을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독립군인 유해진이 돌아다니던 대도를 주워다가 쓰고 다닌다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전직 [[마적]]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그럴듯하다. 또한 일본군도 특유의 전투교리로 인해 [[반자이 어택|착검돌격을 중시했기 때문에]] (...) 전투에서 병사의 사격실력과 함께, 검술실력도 중요한 능력으로 강조하는 것은 영화상 연출이 아니라 현실이었어도 매우 자연스럽다. 오히려 잘만 연출했다면 '총질뿐만인 여타 전쟁영화에 비해 상황이 대응하는 다양한 무기들의 전략적인 활용을 보여준다'는 호평까지도 기대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질 못하고, 무협영화 마냥 대도로 10~20명의 적을 상대로 무쌍을 찍고 앉아있으니... 유해진이 장초지대를 내달리며 어리버리한 일본군을 공격하는데, 일본 병사들은 다가오는걸 눈치채지 못하고 멀뚱히 있다 하나씩 참살당한다. 아무리 장초지대라도 그 덩치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병사가 눈치 못챌 리가 없다(...). 결론적으로 고증에 부합하고 나름 괜찮은 요소(대도, 검술)를 닌자 액션으로 만든 게 아쉬울 따름. * 작중 '''류준열 캐릭터 혼자서 방금 파낸 기관총을 갈겨서 봉오동 전투 전과 수준으로 일본군을 쓸어버린다.''' 앞서 언급했듯, 봉오동 전투 당시 독립군 측엔 기관총이 없었다. 있다고 저 정도 장면은 람보 2에도 나오지 않을 장면이다. * 이장하(류준열)를 비롯한 독립군 몇명이 아라요시 시게루(박지환) 중위 외 일본 육군 기병 몇명을 언덕에서 유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라요시 어깨너머로 보이는 독립군 거리상 어림잡아 100미터 이내 정도로 보임에도 말을 탄 기병들이 두 발로 뛰는 독립군을 따라잡지 못하며, 심지어 "저것들이 사거리 밖에서 약올리고 있다."는 대사까지 나온다. 당시 일본 육군의 제식 소총인 아리사카 38식 소총은 유효사거리 366m, 최대사거리 2,377m다. 100m 정도면 소총이 아니라 '''[[머스킷]]'''으로도 사살할 수있다. * 이장하(류준열)는 단독 유인 작전에서 어깨 부분에 총 한발, 봉오동 상촌에서 가옥 안에 숨었을 때 일본군이 가옥 굴뚝 안으로 투척한 수류탄 두어 발, 심지어 봉오동 계곡 안쪽에서 일본군이 쏜 산포 포탄에 맞아 멀리 날아가고 그 여파로 다리가 절단되었음에도 죽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 이장하(류준열)가 혼자서 [[뺑반|"이 동네에서 가장 빠른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나야."]] 라는 대사를 치며 절벽 위에 포진한 일본군의 시선을 유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폐를 하지 않고 개활지 비탈길에서 그냥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는 게 전부임에도 [[스톰트루퍼 효과|다수의 일본군들은 한 발도 못 맞힌다.]] * 황해철(유해진)이 월강추격대 본대의 이동을 쌍안경으로 보고 "[[호치키스 기관총|호치키스]] 같은 센 놈들만 모아왔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 때 스크린에 잡힌 기관총은 호치키스가 아니라 [[맥심 기관총#PM M1910|맥심 PM M1910]](위에 언급된 류준열이 갈긴 기관총과 같은 모델)이다. * 극중에서 홍범도 장군의 모습과 남아 있는 사진을 통해 본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머리 모양과 입고 있는 군모, 군복이 실존 인물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첫 등장은 나비를 부리는 도인처럼-- [[똥]]싸며 -- 등장했다. 일단 영화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1980년대 [[불가리아군|불가리아 육군]]의 사병용 [[코트]]를 입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진 속 홍범도 장군은 [[소련군|소련 육군]] 장교에게 주로 주어진 누비 코트였음에도, 영화에서는 고증에도 맞지 않는 불가리아 육군 코트를 입고 있다. 이렇게 틀리게나마 소련군복을 묘사한 이유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홍범도 장군의 사진, 그중에서도 '소련군 코트와 방한모를 쓴 홍범도 장군'의 사진에 나온 복식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진 상의 소련제 코트도 '봉오동 전투' 라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나오면 안 되는데, 봉오동 전투 즈음의 홍범도 부대는 '''한복 또는 중국 북양군식 군복'''을 사용하였다는 기록[* 1919년 11월 15일 일본 고경측 32500호 기록]이 있으며, '홍범도 장군 사진' 으로 알려진 사진의 군복은 1924년경, 즉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사실상 해체되거나 소련 적군에 편입된 이후에 제정된 군복으로, 실제 사진의 소련군 코트를 입은 홍범도 장군 사진은 '봉오동 전투 당시의 홍범도 부대' 사진이 아닌 '노령 독립군 활동 당시의 대한독립군 잔존 세력'의 사진 정도로 보는 게 타당하다. * 일본 육군 병력이 하천을 건너는 것을 본 한 [[중국인]] [[낚시]]꾼이 중국어로 남의 땅에 함부로 오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다 살해당하는데, 실제론 중국 경찰관들이 일본 육군과 경찰들을 발견하곤 무단 월경하지 말라고 했으나 무시당하기만 하고 해를 입지 않은 경우만 있지 중국인이 살해된 기록은 이때엔 없다. * 월강추격대의 일본 육군이 밤중에 산에서 조선인들을 수색하는 장면에서 한 명이 [[휘파람]]으로 [[일본 해군]]의 [[군가]]인 [[군함행진곡]]의 곡조를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육군인 월강추격대 병력이 군함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설정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보병의 본령]]이나 [[일본육군]] 같은 육군 군가를 불렀더라면 더욱 적절했을 것이다. 군함행진곡은 엔딩 크레딧의 삽입곡에도 등록되었다. 그냥 개중 잘 알려진 일본군 군가 아무거나 넣은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봉오동 전투 묘사 * 전개를 보면 독립군이 매복한 상태였고 일본군을 유인하고 사격하는 것일 텐데 총쏘기 전부터 매복지에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전에도 병력이 능선상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자주 보아는데, 이동시에 저격수의 눈에 잘 뜨이는 능선/공제선상을 피하는 것은 전술 행군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게다가 적이 어디서 쏠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좁은 길에서 일렬로 뭉쳐 이동하기까지 한다. 이 때 앞이나 뒤에서 쏘면 다 죽는다. * 매복지에서만 총을 쏘는 게 아니라 일본군과 근접으로 전투하는데도 총질로 쓸어버린다.(최유화 캐릭터도 일본군을 전문적으로 사살한다.) 이러면 아군에 대한 오사를 피할수 없다. 매복지에서 아군 등짝을 쏘지 않고 일제 사격을 하려면 2~3 선으로 사선을 구성하여 앞 사람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신호에 따라 한 줄씩 머리를 들고 쏘고, 다음 차례 기다리며 장전을 하는 것이 맞다. * 화창하고 맑은 날씨에서 독립군이 거의 일방적으로 일본군을 쓸어버린다. 게다가 독립군 측은 다들 코트 등 방한복을 껴입고 있는데, 일본 육군은 아무도 코트를 안 입고 있다. 나중에 홍범도 장군이 코트와 방한모를 착용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의 당위성 부여를 위한 억지 설정으로 보인다. 심지어, 홍범도 장군이 처음 등장했을 땐 여름용 사복을 입고 있다가, 뜬금없이 다음 번엔 예의 그 코트에 방한모 차림으로 나온다. * 쓸어버리는 도중에 주민들에게 즉석으로 총을 나눠줘서 합류시키는 여유까지 있다. * 양측이 서로 [[저격수]]를 적극적으로 운용한다. 당시 양측에 저격수도, 스코프 달린 소총도 없었고[* 일본군의 저격총 도입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반에 스코프를 달 수 있게 개조한 38식 보병총을 극소수 배치한 것이 시초로 작중 시점에서 거의 10년 뒤의 일이다.],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전간기는 전 세계적으로 저격수 운용의 암흑기에 가까웠다. * 월강추격대장 야스카와 소좌가 주안공과 일기토 뜨다 전사한 듯이 나오는데, 야스카와 소좌는 실제론 부상조차 당하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 돌아가 훗날 중요 사료로 잘 쓰이는 전투 보고서까지 직접 작성했다. * [[구군도]]가 불량품처럼 나오는데, 황해철이 처음 칼을 뽑을 때 일합 만에 반동강이 나고, 일본 육군 장교와 싸우다가 군도를 뺏어서 싸울 때는 칼이 아니라 쇠몽둥이 마냥 잘 안 베인다. 이쯤 되면 [[람보 2]]가 봉오동 전투보다 현실적이다. 람보 2와 비교는 아래 '영화적 불가피한 각색여부' 설명 참고. ~~총에 반동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